무너미 옛집에서

작은 상봉

소세골이야기 2006. 8. 13. 11:33
아침 뒷창을 열면 건너 언덕 외딴집 남정네 엊저녁 부터 그대로인지 마루위 긴의자에 정물처럼 누워있다.
언덕아래 옥수수밭 귀퉁이 초록 호박덩굴밑에 늘 서있던 그집 작은 빨간차가 보이지 않고부터 이른 새벽마다 마주치는 모습이다.
작은 딸아이도 그 똘망하던 눈망울이 힘을 잃었다.

유난히 뽀오얀 피부에 세련된 몸매와 옷 메무세 ,산골 아짐들 분위기와 사뭇 다른 젊은 엄마는 그찮아도 눈에 띄곤 했는데
그래도 별 가진것 없고 그렇다고 부지런히 농삿일 잘 해내는 일꾼도 못되는 남편따라 내려온 시골 살림 연로한 시어머니 까지 모셔가며 해내는 것이 대견스럽더니.
어느날 학교마당에 젊은 엄마대신 할머니 손녀딸 손잡고 와 '즈이 엄만 친정 일있어 갔어' 한 날 이후로 그 뽀오얀 젊은 엄마 얼굴은 보이지않았다.
 
정있어 보이던 부부사이 무에 그리 깊은 골이 패였는지 잠시려니했더니 오래 날가도록 할머니와 아들, 어린 딸아이 힘들고 안스런 모습만 눈에 밟히고 ,그러려니 사람들은'잘사는 도회 사람들도 걸핏하면 도장찍고 돌아선다는디 아 뭘 바라보고 이 시골 구석 돌아오겄서. 나가보면 좋고
신나는거 많은 시상인디.'한마디씩 거들며 체념으루돌아섰다.

그런데 오늘 아침 창 밖 풍경이 사뭇다르다.
그집 남정네 집앞 동네길을 내려와 서성이고 딸아인 마루끝을 부산스레 오르내린다.
움직임에 활기가차있다.
그러고 보니 빨간차가 온통 초록빛인 언덕아래 꽃처럼 예쁘게 서있다.
갑자기 마음이 젖어들어 눈앞이 뿌연하니흐려왔다.
 
한나절 참다 수화기를 들었다.
'뭔 휴가가 그리 길어? 잘 놀다 왔어?
설마 잠깐 놀러온건 아니지?'
어색해 하는 젊은네에게오히려 짖궂은 소리가 무난할거 같아서.
'커피 한잔 마시러 놀러 올래?
참 내일 학교 행사있어 엄마들 가야 돼. 자모회장이꼭 데리고 오라 그랬어. 갈수 있지?'
한달음에 능청 떨고 수화기 내려놓고, 또 괜시리 눈물이 배여훔쳤다.
젊은 엄마가 너무예뻐서 대견하고 고마워서.
돌아오는 맘이 쉽진 않았을 텐데... .
맘으로 나마 꽃 몇송이 주고 싶다. 환영의 뜻으로.

저 역사적인 안타깝고 가슴아린 이산의 상봉 아니라도 가족의 상봉은 어디에서나 눈물겹고 어여쁘다.           
                 2000.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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