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미 옛집에서

하나할메

소세골이야기 2006. 8. 13. 11:45

건건넌 동네 산비탈에 스러져 가는 오막 한채
올해는 쥔 잃어 적막하다.
하나할메 볼적마다 나는 '가즈랑집할메'생각이 난다.
이사 오던해 동네에서 제일 낡은 그집
그런데 울안은 꽃대궐이었다.
달래넝쿨 순이 꽃보다 예쁜 초록으로 우거지고
접시꽃 족두리꽃서 부텀 봉숭아 채송화까지
이른봄 개나리 붓꽃 피고나면 늦가을까지 할머니네 마당은
발 딛을 자리없는 꽃대궐이다.
오며 가며 씨얻어 뿌리고 뿌리 한쪽 얻어다 심고
그렇게 키워 다시 한쪽씩 한웅큼씩 씨 받아 나눠
온동네 집집마다 하나 할머니네 꽃들이 새끼쳤다.
우리집 꽃밭도 이사온해 을시년 스럽기만 했던 흙마당이
하나 할메덕에딸기밭부텀 시작해 이름도 모를 분홍꽃 노랑꽃
가을 소국화까지 제법 모양세를 갖추었다.
하늘 거리던 꽃송이 목긴 고개짓이 좋아 몇번 씨 받아 뿌렸는데
새색시 머리위 화관같다는 족두리꽃만 아직 못 피웠다.

이북이 고향이라 삼팔선넘어 내려온 하나 할머니
물방앗간 영감이 좋아 살림차리고 아들딸 낳아 살았는데
'이놈의 영감자구,아이구 징긋혀. 그놈의 노름팽이 끼꺼리(끼니
꺼리 쌀) 한됫박만 있어도 털어나가 .
내가 죽고나면 길바닥 나가 춤춘다 했어. 저 집까지 애ㅡ땀으루
겨우 마련한거 노름으루 날렸잖어.'
쳐다 보이는 언덕배기집 날마다 아까운 눈길로 보며 뇌인다.
영감덕에 하도 굶기를 밥 먹듯하며 살아 버릇이 돼 지금도
빈속에 새벽 밭일가면 점심때 까지 내쳐 배고픈줄 모르고일한단다.

그 징하던 영감도 가고나니 아픈데 장대같은 아들 둘  년년이
영감간길 따라 가 버렸다.
손주하나 며느리랑 달랑 남긴 큰아들, 둘째 아들, 어려 마마손님
잘못 맞아 보낸 셋째 아들, 가슴에 묻은 그 자식들 얘기 풀어놓을
때면 할머니 내려 앉은 붉은 눈꺼플에 진득하니 묻어나는 눈물이
애간장 녹은 핏물같다. 
하도 가슴은 짓이겨나고 따라가도 못하는 명줄에 잠못자는 밤마다
할머닌 달빛 나앉아 키질을 해댔단다.
콩까불고,들깨 까불고 한숨으로 불어했을게다.
키질 소리에 덩달아 잠못이룬 옆집 사람들 참다못한 성화에
지난해 부텀 그도 못하고 날부연 새벽이면 호미들고 밭고랑에 앉
는다.
할메 나이 올해 팔순이란다.
지난 봄엔 열뎃살에 집나간 딸년이 이십여년 넘게 소식이없어
죽은줄 알았더니 아뜰 딸 낳고 잘 살아있다고 어찌 수소문하여
전화가 왔더란다.
살아 못보는 그자식은 남몰래 또 얼마나 가슴녹였던지
그딸 소식들었으니 이제 죽어도 아무 여한 없노라며 또 진물같은
눈물을 훔쳤다.
엄마 목소리 듣고도 선듯 달려오지 못하는 딸자식 마음은 어떤
건지 키 멀쑥한 외손자만 여름 방학때 할머닐 보러왔다.
그 만으로도 그저 좋아 얼굴이 환해졌던 하나 할메.
팔순 나이에도 밭일 품일 쉬지않고 농사철 아닐땐 취로 사업장
따라다니며 일손 놓지않는다.
할머니 나들이옷 입고 버스타러 바삐 가는 날은  보건소에 약타러
가는날이다.
' 그놈의 무릎 고갱이 왠 날마다아픈지  ' 하며.
평생을 날마다 구부린 몸짓으로 일에 물렸으니 어찌 안 아플까?
IMF덕에 부실해진 하나남은 막내 아들 살림살이 가끔 보태시는지
멀찍이 가끔 드나드는 아들 모습보이면 닭장수차도 할메집앞에
한참서서 닭한마리 잡아팔고 간다.

들여다 보면 골골이 옛 어머니들 삶이 한없는이 없고 소설보다
진한 빛꺼리 삶아닌이 없다.

땅 임자 서울사람네가 툇마루 닳도록 부엌 흙바닥 돌보다 단단
해지도록 살아온 오막을 비워내랬다.
올봄 하나 할메는 아들하나 데리고 홀로된 큰 며느리네로 얹혀
들었다.
임자없는 마당의 꽃나무들도 이집 저집 새 주인찾아 얹혀가고
할메 없는 빈 오막 누가심은건지 장대같은 옥수수, 호박덩굴만
유난하다.
어쩌다 먹거리하나 나눠 드려도 어린아이 같이좋아하고
우리 할메 딸들이 철철이 사다준 옷들 차곡차곡 쌓여 안입기에
몇개 나눠 입으시라했더니
팔순 고개 넘은 두할메 말동무되어 마주 앉으면
가슴속 세월 풀어 내느라 두손 내저으며 
목소리 높여 가지만

그러나 두노인네 눈빛은
저마다 머언 세월너머로 아스러이 젖들어 있다.

올가을엔 하나할메 북에 두고온 딸도 아닌데
딸 얼굴 보듬어 안아 보셨으면.
 
                                 이천년 팔월 열아흐레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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