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으소 .'
무심히 듣고 흘려 살아온 육자배기 가락같은
말자락이
올 추석엔 유난히 마음에 닿았다.
추석 전날 밤 휘영 솟은 달님을 보고 두손모아 소원비는
아들아이
등뒤에서 문득 절로 흘러나온 기원 소리였다.
지금 이대로의 평온함으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리 사는
세상이기를 참 절실한 마음으로
보듬어 달님께 빌었고
천지 신명께 빌었다.
옛 사람들이 집 모퉁이 마다 신을 섬기고 부뚜막 조앙신에
까지 섬겨 늘
생활이 그대로 기원하는 삶으로 이어졌던
그 절실함이 마음에 젖어들었다.
사랑하는가족을 거느리고 여린 자식을 키워나가는
모든이의
마음자리이리라.
큰 싸움으로 피흘리는 참혹함이 없고,
기근과 재앙으로 크게배고파 굶주림이 없고,
질병돌아
병들어 죽고 이별하는 환난없으니
세상의 평안함속에 자식을 키우고 내가족 평온한 삶을 이루니
그예 더 큰 고마움이 없다.
아직은
그저 땀흘려 일하면 굶주림 없이 헐벗음 없이 살아갈수
있는 질서가 있으니 그로 고맙다.
살아가고 나이를 더해감은 작은 것이
소중해 지고 고마워 지는
자리다. 그 작다고 생각한 것이 실은 가장 큰 것이고 바탕자리
임을 배워가기 때문이다.
명절
전날의 그 오붓하고 정념가득했던 달님모습이 태풍바람에
자취를 감추었다.
내 맘자리에서도 명절 하루 쉰 다음 맘자리가 그저
고맙고 평안
치만은 못하다. 태풍 탓은 아닌데... .
자연은 그오랜 어김없는 운행으로 거둠의 계절로 풍성함과 그
누림을
뭇 생명의 자리에 선물하는데 모처럼 마주하는 사람들의
마음자린 왜 이리도 메마르고 척박해 보이는지..... .
모처럼 모이고
마주하여 반갑고 웃고 그리하는 모습은 예전같건만
마음 깃자락 하나 풀썩 들추이는 자리에 묻어나는 정내음이 없다.
마르디 마른
먼짓내음만 재채기를 일으키게 한다.
올 추석 내게 또하나 전에 없던 절실한 배움자리가 있었다.
병자호란때 이야기
였던가?
전쟁으로 오랑케에게 앗긴 조상의 위패를 찾아오기 위해 어린 자식
을 판 어느 아버지의이야기.. .
지금껏 내게 그
이야긴 잘못 된 인습에 얽매여 부모의 도리를 저버
린 어리석은 아비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어제 하루 가슴속에 큰 주먹감자 만큼한
응어리를 박고
돌아서와 화를 삭이고 투털거리는 맘 분란 속에서
문득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 아비의 모습이
살아왔다.
한치도 못되는 그 나뭇 조각 위패가 그분의 맘에선 살아 있는 조상-
부모와 다름이 없었던 그
절실함... .
그 분의 마음속에 부모는 그대로 살아있는 부모였다.
그 마음으로 자식을 팔수 밖에 없었다면 그는 결코 자식을
저버린게
아니구나. 그 아들은 또한 그 아비의 마음을 저버리지 않고 원망치
않았으리라. 그리고 어느곳에 어떻게 팔려가고 살아있건간에
그아들
아이는 아비의 마음과 함께이니 불행치도 잘못되지도 않았으리라.
죽은 부모의 위패가 그예 산부모의 자리였거늘 어찌 산
자식을
버린들 버혀졌으랴.
부모를 생각하는 자리는 자식을 향한 마음 자리와 다르지 않다.
아니 다르지 않아야 한다고 애써
주장하는 것이 이젠 옳겠다.
자식을 잡한 내리 마음은 예나 이제나 그 자리이건만
부모를 향한 마음들은 예전의 모습이 아니다.
치오르는 마음 자리여서 내리 흐름보단 어려운 걸까?
그래서 잊고 잃기 쉬운 그 자릴 애써 간직케 하려 옛 어른들은
인습이다,
도리다 이름하여 틀을 만들고 엄히 자리 보존하여
내림하였던가!
불혹이라 이름하는 나이의 허리 반을 꺽어드는 이제사
,
그리도 고루하고 걸치적 거리는 나뭇 등걸쯤으로만 생각해온
인습과 도리가 무엇인지 마음에 자리 매김하여 드니...
.
우리 할메도 여느 나이든 팔순노인네다.
명절 앞두고 저만치 한달도 먼첨 앞서 맘 설레는 아이같다.
열손가락 치켜들고
노랫말삼아 늘 자랑하는' 열자식 낳아
넷 잃고 키운 여섯 자식들 ,마흔 셋에 혼자되어 죽을 고생하며..'
'늘 새벽이면 잠없는 늙은이
일찍일어나 앉아 니들 잘 되고
잘 살라고 기도한다.야야...' 자식 안부 전화만 오면 그저 붙잡고
외는 소리 ... .
그 여섯 자식 늘 궁금하고 보고 싶고 그리운 건 노인 맘.
바삐 휘돌아 살아야하는 자식들이야 어디 뒤돌아 늙은 부모 맘
헤아릴
겨를이나 있나.
그러니 한가한 노인네 자식 그리운 맘이야 그저 명절날 돌아오고
생일날 돌아올때까진 꽁꽁 보따리 여며얄 밖에...
.
추석은 달 반도 더 남은 일찍부터 낯이나 밤이나 앉은자리 적적
하면 싸놓은 보따리 풀고 다시 싸고.... .
그저
모인 자식 따라나서 서울 아들네 딸네 집집이 살림자리 한
바퀴 휘돌아 올 생각에 들떠,멀리 둔 자식들 아릿답고 이쁜 맘에
날마다 얼굴
마주하는 자식 며느린 뒷전이고 시답잖아,내겐 명일
앞둔 그 시집살이 스트레스도 만만찮다.
그래도 속얇은 며느린 시어머니 없는 한달
남짓한 휴가가 그 뒤에
기다리고 있으니 참고 너그러울 만 하다.
그 오래 목맨 기다림, 노인네 삶은, 몸은 오늘을 살아도 맘은
현재
가 없다. 늘 회상의 자리에서 지난 세월 가장자리를 맴돌며 그
따순 정념에 목축여 산다. 자식을 앞두고 봐도 현재의 모습은
더이상 맘에 새기고 깃들 기억의 자리가 없다.
에전의 그저 품안의 예전 내자식일 뿐이다.
부모의 맘은 그저 옛집에
머물어 자식을기다리는데 ,
앞 바라보고 정신없이 달려 사는 세상의 자식들은 설혹 몸이
부모곁에 와도 마음은 여전
바쁘다.
고3 시험생 아들을 둔 막내네는 그 아들아이가 머리 아프다하여
따라 오지도 못하고 집에 있는데 같이 철없는 할머니
모처럼
다니러 가면 이것 저것 필요없는 잔소리 간섭 해가며 손자들이랑
토닥거릴테니 수험 암둔 아들아이 예민한 마음자리 불편할까
하여
전전 긍긍한 속내 접어두고,
'이사잣야 되니 다음에 모셔 갈께요' 궁색한 변명.
큰 아들 내외는 둘 다 맡벌이 나가고
아이들도 없는 빈집 밥도
못 차려 드리는데 혼자 어찌 계시냐고 사시던 곳이니 그래도 둘째
아들네 가 계시는게
편하겠다하고,
그래도 맨날 사시던 내 몸담은 자리 가만 계시면서 어린 손주놈들
하고 노시는게 좋지, 아이들도 없는 집에 뭔 재미루..
.둘째의 변.
세상에 팔순 노인이 얼마나 살날이 많이 남아 명절날마다 보리라고
철없이 세상 물정 물러앉은 노인네 잔소리가
성가시면 얼마나
성가셔서 오래야 일주일 보름 남짓한 그 나들이를버거워 하는지
억장이 막혔다.
커다란 생 감자가 명칫녘에 걸려든듯
컥하니 막혀왔다.
그래도 그 자식들 맘 헤아리지 못하고 그저 따라 나서고 싶어
'지난 번 딸 사다준 옷이 작아 서울가서 바꿔 입어야
한다'고
떼 아닌 억지소리 해대는 노인네 쥐어 박고 싶은 못된 며느리심정.
그래 그들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고
힘들겠지.
세상살이가 모두 정신없이 휘둘리고 눈코뜰새 없이 바삐 살아야
하니... .
끈이 헤어지도록 풀고 싸고 되풀이,
얼마나 가서 살거라고 몇보퉁
이 말도 안듣고 싸 놓더니 그 보따리 사흘만에 되싣고 앞자리 할메
앉히고 돌아 오는길, 아무리 삭히려
해도 자꾸만 분통이 터졌다.
할메 뒷 통수가 미웠다.
아랫자리 자식 귀한줄 알면 내 자식 자리였던 부모자린 ...
어찌
맘에 그리 여유없이 살아야 하는가.
늙은 부모위해 단 며칠 일자리 쉬고 따순 밥 지어드릴 여유도
없이 그리 각박히 벌어얄 만큼 밥
굶는 세상도 아니고 ,
누울 자리 없이 단칸 방에 옹기 종기 몸뉘여 부대낄 만큼
그리 좁게 살지도 않건만 ,
내 피 내리고 살
내려 준 부모에게 한 웅큼의 되돌림도 하기
어려운 이 메마른 살벌함은 무엇이던가.
그 버석거리는 마른 마음 자리로 그 아랫 자식에게
아무리 마음
다하여 기울이고 정성들인들
조상 위패 모시기 위해 아들을 판 부모의 맘 그 자리만큼 자식
의 맘에 닿을
것인가.
낳아 먹이고 키운 자식이 순간의 감정을 절제 못하고 부모에게
흉기를 휘두르는 세상.
제 자식에게 돌이킬수 없는 그
멍에를 지게 하는것이 누구의
잘못이고 죄이며 어디서 부터의 그릇됨일까?
그 자식들에겐 부모에게 어찌하는것이 자식의 모습이고
도리인지
보고 배운 자리가 없는 것이다.
어미새가 새끼를 품고 모이를 먹이는 것이 어디 교육이 있어서
인가.
강아지에게 젖
물리고 피골이 상접된 어미개와 모이와 물도 마다
하고 알을 품는 토종 어미 닭의 모습이 양게장에서 부화한 닭들
에게 주사와 약으로
먹여 가르칠수 있는 것이던가.
부모를 돌아보고 보듬어 안을 여유 조차 없는 바쁘디 바쁜 자식들
의 모습, 버혀지고
잊혀진 부모보다 그들이 슬프고 불쌍해 보이
는 것은 버린것이 잊혀진 것이 부모가 아니라 그들
자신이어서
일게다.
늙어 부모가 되어 살아야 하는 또하나의 그들이 ,
본 자리 없는 그들의 아이들이 부모가 되어 다시
살아야할
또 한 삶이.
그러고 보니 부끄럽고 미운 건 언제나 부모이기 이전에 남편의
부모이고 아이들의 할머니 일뿐인 그
자리에 자리메김하는
내 못된 마음자리이다.
그래 모두가 들추어 보면 내 마음 자리
이구나.
이천년
팔월 한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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