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미 옛집에서

늙은 호박 하나

소세골이야기 2006. 9. 2. 09:58

해묵은 늙은 호박하나 썩지않기 여름내 가을내토록
그 자리 머물어 잊혔더니 새 가을 햇물 호박이 옆자리 둘레 둘레
모여드니 문득 이제 물러갈 시간이라 여겼던가
뽀오얗게 분올라 마를대로 마른 갈빛도는 작은 몸내가
자식 모두 장성하여 내보내고 홀로 나앉아 세월 사위는 머리 희끗한
여인네의 탯거리이더니 한 귀퉁이가 일그러 든다.

왜인지 못내 아까워 그 가비얇은 몸을 며칠 만지작거리다
오늘 자르고 껍질벗겼다.
시골집 처마아래 줄래 줄래 걸렸던 늙은 호박 타래가 생각나
흉내 내 보려하니 도무지 감이 안 잡힌다 .
기껏 초생달 모양의 반쪽 ,겨우 끓어지잖은 두줄짜리 두개 챙겼다.
옛니들의 손 맵씨란 그 살림 맵씨는 곁에 두어 늘 함께 보는양
없이 겉모습만으론 어림 짐작도 되잖는다. 나처럼 살림 솜씨둔한
네에겐.... .
올 돌아오는 정월 대보름 전날 열 나흩날엔 우리집 대주 호박 고지떡
먹겠나?
그 무렵이면 눈길 미끄럽단 핑계로 읍내 장에도 잘 나가잖고 제머리
쑥스러 못깍으니 케익하나라도 사러가제도 묵묵..
늘 찰밥치레로만 지나버린 남편 생일 , 이젠 아이들도 좀 자랐으니
챙겨야제.
가까운 자리 마음은 아니래도 부모 자리, 자식 치레 챙기다 보면 늘
서운케 머뭇거리다 마는게 남편 대접이다.
마를대로 마른 속 ,폭익은 노랗다 못해 붉은 단내나는 호박속.
나이먹어 살껍질 말라 주름지는 우리 속내도 저만치나 잘 익혀 살 수
있을라나.

오늘은 늙은 호박 하나 갈아 우리밀 살짝 섞어  호박 찌짐이나 부쳐
저녁상에 놓아야 겠다.
먹성꺼리 흔해 호박죽은 끓여 놓아야 늘 남아돈다.

노오란 호박전이 감자간것과는 또 다른 맛나는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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