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제비를 기다리며

우리 형님 이야기

소세골이야기 2006. 9. 28. 09:50

 

시집오니 손위로 형님이 두분 , 손아래 동서한 사람

그렇게 각성 받이로 강릉 김씨네 며느리 된 인연에 형님 동생이 된  가족이 세사람 생겼다.

 

그중 바로 손위 둘째 형님 이야기 이다.

오늘도 늘 그렇듯이 아직 걸음이 불편한 민정이를 데리고 한 시간 짜리 등교를 하는 내 뒤에서 형님은 부지런히 마늘 창고 정리를 하고 계셨다.

작지도 않은 창고 바닥엔 손질 하다만 통마늘 씨아하며 매달아 놓은 마늘씨들이 이리 저리 떨어져 뒹구는지 오랜데 도무지 내 살림 솜씨에 정리 해낼 칸이 없다.

 

부엌이며 뒤안이며 온집안 어설프기 짝 없던 곳곳이 며칠 다니러 오신 형님 손끝에서 말끔히 정리되고  이제 오후에 집으로 돌아가실 시간을 받아두고선 창고 남은 자리 마저 정리하고 무에 하나라도 더 간추리고 다듬어 놓고서야 길 나서려고 새벽부터 분주하기 짝없다.

 

영월 형님 댁에서 30분 남짓한 거리인 이곳 단양이 어쩌다 보니 우리 가족의 정착지가  된  터라 처음 집수리 하고  이사들때 부터 아주버님과 형님 그리고 제대를 하고 마침  직장 발령 대기중이던  큰 조카까지 세 식구가 덤벼들어 도맡아 궂은 일 험한 일을 모두  감당하다시피 맡아 해내 주셨다.

 

그때 부터 형님은 내겐 친정 엄마  자리를 대신 해 주시는 분이었다

세속의 나이로는 잔나비띠에  나이도 동갑네기지만 형님은 내가 시집 올 때  벌써 같은 띠의 둘째 아들까지 둔 터였다.

호미자루 한번 잡아보지 못한 주제에 농투성이가 되겠다고  밭 장만하고 집마저 옛 정취 찾아가며 30년 묵은 다 쓰러져 가는 옛집을  수리해서 쓰겠다고 

이삿짐 보따린 형님네 바깥채에 풀어놓고 집수리 부터 나서 시작한 살림이니  그 철부지 농사꾼  치닥꺼리  몇년을  자리 잡도록 받쳐 온 형님내외분 마음 고생이 알만할 바이다.

 

3월 말 부터 시작한  집수리에 농사가 겹치니  아주버님 조카 형님 모두가 메어 달려도  손이 부족했다.

 밭 손질하다 집 수리 거들고  참꺼리 마련하고 다시 밭으로 달려 나가고..

거기에 류마치스로 서서히 나타나던 딸 아이의 증세가 심해져 오면서 걷기가 불편해져  내 일이 배가되니 자연 밭일이니 집안 뒷 설거지가 형님 몫이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서툰 농사꾼의 무디기 짝없는 살림이 사년째 해를 내리 반복하고도 여전히 살림은 손끝에 붙지를 않는다.

 

늘 종종 걸음으로 이곳 저곳 헤집어 다니며 벌려 놓기만한 어설픈 내 손끝에  비해  ,

형님은 서두는 기색하나 없이 슬몃 슬몃 지나치는 걸음에 한번 들여다 보듯 그저 주섬 주섬 손짓  몇번 준듯한데  지나간 자리는 어느사이 말끔히 정리가 되고

 마당 귀서리엔 어느사이 화로가 놓여지고,

아궁이에 일찍 불지펴 가마솥 한 솥단지 끓는 물엔 엊저녁 담가둔 콩이 갈아져 얌전히 끓어 오를듯 말듯 .

그 불 줄여 퍼담아 숯불화로에 부어 작은 솥두껑 뒤집어 하늘보기 해 올린 곁엔 메밀  갈아 걸러 풀어 앉힌  부침 반죽이 걸쭉하니 한양푼 자리하고 있다.

 

물 한동이 날라오고 ,주걱 찾고, 두부 자루   간숫물 챙긴 것이 내일 고작인데...

 

상차리고  앙념 간장 만들고 겨우 밥 한솥 할  겨냥이면 

앏게 맵시차린 매밀부침 수북하니 한접시

어느사이 걸르고 다시 엉겨 눌러진 손두부 한 양푼...

 

푸짐한 시골 밥상이 차려진다.

 

형님이 다니러 오시면 어김없이 다음 날 아침 우리가 맞이하는 성찬이다.

 

그러고도  상 물린 설거지 말끔히 .냉장고며 찬장속의 묵어가는 그릇들 정리하고 비우기  , 그리 부엌이 말끔히 정돈되면

민정이를 데리고학교에서 돌아올 두시간 남짓한 즈음이면 어느사이  밭이랑에 앉아 계신다.

크지도 않은 아담한 체구의  그 어디에  저리 끓임없이 솟아나는 힘이 있는지  나는 늘 탄복할 뿐이다.

나는 늘 부럽디 부럽다.

자근 자근한 손 끝에서 묻어나는  형님의 그 맵씨좋은 살림 솜씨가...

그리 끓임없이 일에 일을 고리지어 해 나가면서도 지친 기색 한 자락 없이 늘 느긋한 형님의 품새가...

내가 그리 말하면  형님은  그런다.

무에 여느것 내 못하는거는  민정 엄마 잘 하잖아. 어디 놀고 안하나?

그 말 뿐이다.

그리 어설퍼도 그리 찌든 얼룩이 많아도 , 그저 속내 부끄럽잖게 덤덤한 얼굴로 치우고 쓸고 닦고

언짢은 기색 한번  흉잡는 말 한마디 없음에다.

 

그런 형님이 늘 친정엄마 만큼이나 편안코 무안없어  난 뻔뻔스럽도록 형님한테 내어 맡긴다.

 

이번 명절 치레도 그랬다.

 

일주일 남짓 앞서부텀  열무 김치  물김치 담그어 놓고 잠시 다녀 가셨다가  추석명절 앞뒤로 양 이틀을 자리 앉을 틈 없이 분주히 미수를 앞둔 연세의 어머님 모신덕에 큰 집에서 차례상만

물리면 우리집으로 몰리는 온 가족들  뒷 치닥거리를  도맡아 해 내셨다.

 

형님 다니러 온 날이 내겐 빼도 박도 못하는 살림살이에서 큰 휴가인 셈이다.

 

늘 고맙기만한 형님께 둘 서로 뭉근 성격이다 보니  차려서 고맙다는 인사도 못하고 이리 마음털이나 해 본다. 그래도 우리 형님이야 내맘 알 바 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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