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제비를 기다리며

미스 슈베르트의 자존심...노래방에 가다.

소세골이야기 2006. 10. 9. 10:03

아득한 시절  내 소싯적 ~

그 시절 우리들의 음악은  고전 음악실.. 뭐 그런 이름으로 시작되는  음악 다방 이었다.

읍내 면 소재지를 드나들면 좁은 길가에 늘어 선 ㅇㅇ다방, 별 다방 ,꽃다방...촌스러운 그 간판들을 보며 떠 올리기도 하는 ...

가끔  화려한 변신~

인접한 한양 나들이에선 종로 2가엔 르네상스가 있었고 , 충무로엔  필 하모닉이 있었다.

붉은 벨벳커튼 무겁게 둘러친 벽 가장자리 낡은  초록 칠판에 흰 분필가루 날리며 익숙하게 써 내려 갈기는 긴 앞머리 흘러내린 DJ의 손끝에 서 흘러나오는  곡명을 읽으며 ,때로는 지익 긁히는 낡은 판소리끼인 모짜르트와 차이코프 스키를, 초 겨울 맑은 살얼음 같은 슈베르트의 청량한 고독을 훔쳐 듣는 것이 대단한 호사였다.

 

음악적인 음악엔 애초 감이 둔했고 또래 친구들과 선후배들이 으례껏 모임이면 즐겨하던 카셋트 음악에 맞춘 신나는 춤사위도, 통 기타 가수들의 그 신나는 노랫 가락도 내게 두고는 도저히 흉내내지 못하는 성역이었기에 그 자존심을

고전음악이라는  감상용 음악으로 포장했던 거였겠지, 아마도?

 

그래도 FM주파수만 섬세히 맟추어도  그 시절 음악 감상은 괜찮았고  고전 음악실이 모임의 주 장소였던 한 동안의 어울림 패에서, 내게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 2악장을  지켭도록 들려 주던, 클라식 기타로 로망스를 들려주기 즐겨하던 어깨가 각진 친구 덕택에 겨울 나그네의 그 맑고 차가운 음율로 나를 사로잡은 슈베르트는 어깨 뒤에서 친구들이 내게 붙인 닉네임이었다.

앞에 MISS. 가 붙은 ........... .

천상의 날개를 지닌 영혼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빗어 내지 못하리라 싶은 부드럽고 밝게 마음을 어루 만지는 모짜르트의 곡들도 , 차이코프스키의 그 장중한 아름다움도.

나이가 들면서는 슬몃 가을 빗 줄기 소슬한  거문고 산조의 휘어 젖드는 가락으로 ,푸른  하늘아래 둥두렷한 잔치 마당의 흰 차일자락같은 영산 회상의 상회상으로  그리 좋아지나 싶더니만 ,

이제 흙사레질  손 사위에서 쉬일 틈 없는 농군이 되니 . 허리 꺽은 반세월  흰 머리 성근 나이춤이 되니.

하늘 노래가 ,땅 춤 사위가  더 할 바 없이  젖드는 음률이다.

 

그런 데 늦깍이 결혼에 스무 해 좀 못 미친 세월을 세 악동 치닥꺼리 분주타 보니  남들 다가는 관광이며 노래방이며가 내게는 참 낯선 물건이었다.

 소리 내어 노래 부르는 거라고는 옛날 서소문 시절  직장일끝에   동료들이랑 토요일 오후면 드나들던  코러스 다방 이던가?  그곳에서 통기타 가수의  노랫 가락 기타 반주 맞추어  떠들석한 그 소리속에 묻혀 별 표나지 않는 어울림 덕에  한껏 아무러 하게나 불러보던 시절이 고작이었다.

 

그러던 사람이

드디어 지난 추석 노래방엘 갔다.

일찍 길 나선 패들 돌아가고  늘 마음 흥겹게 어울림하는 큰집 조카 떠꺼머리 총각 둘과  그 장정 둘 든든히 호위병 으로 거느린 우리 형님.그리고 외 할머니 댁을 대소사며 명절 빼지않고 찾아 늘 함께하는 우리 큰고모의 백년 손님인 조카사위 내외 , 거기 우리 부부 둘  세 가족이 나섰다.

 

내겐 지난 겨울 머리털나고 어찌 돌아가는 지도 모르는  노래방 구경이란 걸 처음했고  올 추석이 두번째 나들이.

 

도무지 아모래도 익숙찮은  곳이었다.

처음부터 끝가지 가사아는 노래 라고는 없는터,  박자도 음정도  내 소치로는 도저히  따라 잡지 못하는  아뿔사! 였다.

그렇다고 그냥 보릿자루 마냥 될 수도 없고 , 뒤적 뒤적 하다  알듯한 제목 있으면 용기내어 띄워봤다.

휴, 내 귀에도 괴로운 음정 박자이니  오죽이나?..

 

그런데 우리집 낭군님네 어디서 그리 숨겼던 실력 있더랬나?

이십년 가까이 함께 산 내가 새삼 반할 만큼 그리 노래를 잘 부르나!

세녀석중  하나쯤은 제 아버지 닮았더라면  지금쯤 음색이 나타나련만  가끔씩 영 음에 둔한  기색이라 은근히 걱정이다.

아무래도 어미 닮아서란 탓 들을까 봐.

 

아침마다 일기 예보 끝나면 음악 채널 돌려놓고 잔잔한 클라식 흐름으로 아이들 아침 잠 깨워주는  제 아버지 배려에도 불구하고?

 

이제 고추 작목반 한달거리 모임에서 회식끝나고 남정네들끼리 노래방 2차 간다면 은근히 맘캥겨 소란스러울 터이다~.

 

첢은네 들이야 당연 제 분위기 제 빛깔 찾아가며  흥겹게 가락줄 타는데

우리 형님 어떻고?

그리 즐겁게 그리 흥겹게 온몸으로 노래 부르고 춤출수 있는 신명.시샘 날 만큼  부러웠다.

돌아오는 차안에서야 들은 이야기 지만  형님은 늘 라듸오를 틀어놓고 집 바깥엔 스피커 설치까지 따로 해 놓으셨단다.

그리해 놓고 아주 열심히 음악프로 듣고 따라 부르고  집안팍 드나들며 일손 놀려가며  종일을 그리 즐거이노래  부른단다.

그래 형님이야 말로 배달 자손이다.

 

옛 적  대륙을 활보하던  우리 선조들  , 옛 고구려의 거리 마다에는 늘 사람들의 노래와 흥겨운 춤이 끓이질 않았다고 한다.

비록 남의 나라 역사책에서 내 선조의 이야기를 인색하게 전해듣는  슬픈  처지지만  좋은 표현과 칭찬을 아끼는 그들이 표현해 놓은 말이니 우리 조상들의 삶의  흥이 . 어찌 겨웠나 알고도 남는다.

 

우리 형님이 그랬다

 

참 즐거이도 노래하고 춤출 수 있는  형님의 그 신명에  순진 무후한 그 성품이  묻어나 있었다.

 그 어머니를  다독이며 저보다 키가 한참 아래인 어머니의  어깨를 감싸안고  바쁜 일손 책임에 물려서 함께하지 못하신  아주버님 자리를 대신하는  두 조카.

 

이제 초등학교 오학년 아들 아이의 학부형인 조카딸 내외는  끼리끼리의 어울림이 분주할 나이 이기도 하건만 황금 명절 연휴를  어린 두 동생들과  늙은 손 위 두 외숙모 삼촌의 흥 돋우기에 때로 멋드러진 분위기로 때로  일부러 인듯 어설프게도  불러가며 내 아둔한 노래 수준을 파악하고는 그 시절 암직한 노래까지 애써 찾아 띄워가며 함께 불러주는 세심한 배려까지 동원 하였다.

 

마주 이아기 나누는 자릴 귀하다 여기고 ,

이제는 저들조차 뉘 인가 여기는 세살박이 아이의수준으로  단순한 삶의 기억에 머물러  미수의 나이를 넘겨 사는  외 할머니를

가족의 구심점으로 여겨 늘 반가이 찾아드느 걸음을 철마다 때마다 거르지 않는  우리 멋진   마라토너 사위님 ,,,

 

맏 딸 민정이가 언니없는 쓸쓸함을 모르도록  딸 치장을 모르는 둔한 엄마를 대신 해 그나이또래 정서를 살펴  늘 소지품이며 옷가지며 한아름씩  안겨 입 벌어 지도록 만드는  민정이의 예쁜 언니 다운 엄마~

 

그래  그 어울림 의  삼 화음을

 

 뉘 알리요.

 

저마다의 가슴 바닥으로

 

고즈넉히 흐르는  그 아름답고 감미로운 가락 하나이

 

 

지독한 음치의  ,

 

하나 , 절대 음감이  잡 . 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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