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미 옛집에서

단술 한 사발

소세골이야기 2006. 8. 25. 23:03

냉동실 구석에서 여름내 밀려 다녔던 비닐 봉지 하나
오늘에사  양푼에 털려나와 뽀오얀 가루 껍질체 물에 잠겼다.
이른 봄 겉보리 한말 촉내어 말려 갈아 고추장 담그고 남은
엿질금이다.
 몇번 꼬두밥 해 끓여 먹고도 쉬 따뜻해진 날씨에 밀려 냉동실
에서 여름났다.
장터 할메들 손에서 사 들고온 엿질금도 끓여먹어 보면 왠지
제맛이 나지 않아 지난 겨울 어른들 몇 잡고 물어 보아 겉보리
사서 엿질금 내는걸 배웠다.
겉보리 부터도 잘사야 한다. 온통 시골 장 바닥에 까지도 외국산
농산물이 싼값 덕택에 둔갑술 부려 할머니들 보따리 풀러 옹기
종기앉은 틈바구니에 까지도 섞여있으니... .

식혜라고 우리 음료라고 상품화 해서 파는 것.
식혜, 감주,단술... .
경상도에선 식혜라고 하는게 따로 있다. 이북과 강원도 동해 바다곁
사람들이 즐기는 가자미 식혜처럼 매운 맛이나는.. .
무우체에 고구마 당근 밤 대추...( 사과같은 과일도 들었던가?)
모두 체쳐서 엿길금물에 고추가루 걸르고 생강넣고...
그리해서 삭힌것....
지금은 흔히 먹는이 없으니.. 먹어 맛본이 에게는 별미로 입맛다실
것이지만.
우리 어려서는 지금 식혜라고 흔히 부르는 뽀오얀 밥물을 "단술"이라
했다.  입안에 감도는 그 어우러진 달고 부드러운 맛은 결코 설탕의
단맛이 아니었다.
몇번을 해 보아도 어쩐지 허전했던 단술 맛을 처음 내어 본것이 지난
늦 가을 우리 할머니 생신때였다.
장에서 운 좋게도 할머니가 손수 기른 엿길금을 구해와 넉넉히 우려
낸 물로 밥을 삭혀 끓였는데 하루 내내 손끝에서 해내는 감이 좋았다.
생신 날 모인 가족들이 모두 단술 병을 끼고 돌았다.
큰고모댁의 조카 사위는 어려서 먹어본 이후로 처음 본 맛이라며 돌아가
는길 현관문을 나서며도 기어이 한그릇 더 마시고 간다고 주춤거려
몰래 한병 들려 보냈다.
그날이후 엿질금이 바뀌니 그 맛이 또 아니었다. 손 맛이 아니라
엿질금 맛이었던게다.
그래 겉보리 사서 직접 길러 해 먹게 되었다.
이젠 시골 살림에서 조차 귀찮게 구태여 그리하나 소리가 나오지만
편한 방법만큼 잃어가는 것이 더 큰 자리를 몰라하는 소리.
봄에 조청까지 직접 쑤지는 못했지만 내가 키운 엿질금 물로
찹쌀삭혀 담근 고추장은 단 맛도 매운 맛도 지난해 담근 것과 많이
다르다.
단술 맛에서 고추장 맛에서 내가 배운 것.
서로의 맛을 복돋아 주며 어우러 드는 것이 우리의 맛이었고
늘 허전 했던 화확조미료에 의한 얕은 맛과 그 뒤의 갈증이란
원래의 재료가 가진맛을 눌러버린 혀끝을 자극하는강한 조미료의 맛
뿐이었음을... .
맛에 관한 한 모두들 다시다 라는 맛에 너무 중독이 되어 살고있다.
이젠 그게 옛날의 미원처럼 조미료의 대명사가 된지 오래... .
모든 요리에 약방의 감초다. 나물 무침에서부터,제 스스로 조미료의
감미를 지니고 있는 고기 요리에 까지.
모든 맛이 다시다로 통하는 세상이 된것같다.
얼마전 주부들 모임의 통신 계시판에 들렀더니, 단 한가지 요리법
소개에서도 그 이름이 빠진 곳이 없어 아연했던 기억이 있다.
우리 가족은 외식을 즐기지 않는다.
경제적 이유도 물론이지만 ,어쩌다 맛에 솔곳해 즐겁게 먹고 돌아
와도 어김없이 뒤따르는 갈증... 정신 없이 물을 들이켜야 한다.
분명 짠것도,마른 것도 아닌데.. .
그게 조미료 다시다의 맛 때문이란 걸 한참 지나서야 알았다.

그 이후 외식이나 다른 집에서의 식사가 은근히 부담이다.
살림 시작부터 조미료가 전혀 들어가지 않는 우리 집 음식
물론 친 인척들 사이에선 밋밋하고 맛 없기로 소문 났겠지만
그래도 우리 아이들 입 맛은 되도록 원래의 재료가 가진 맛을
죽이지 않은 것에 길들이기는 한 셈이다.
피자대신 엄마가 해주는 피자ㅡ 찌짐( 얼마전 소낭구 님의 글에서
이 이름을 발견하고 얼마나 정겨웠던지-)이 맛있고 우리밀 찐빵이
생크림 케익보다 맛있고 팥 속 안넣은 찐빵 몇개 쪄 두었다가 고기
다져구워 넣고 상추잎에 소스얻으면 햄버거 가게것 보다훨~씬 맛
있다는 촌스런 입맛 하나는 분명하니까.
딸얘는 학교 급식소에서 아이들 다 먹는 햄 소세지는 싫고 껫잎
무침 오이 무침만 밝히는 별종이다.
늘 먹고 사는 것이 생활의 그루터기인 생명의 자리인데 맛이 어찌
많이 먹고 섭취키 위한 도구이기만 하랴.
어울림의 맛 복돋움의 맛으로 미각의 포만함이 여유로운 자람이
늘 강한 한가지의 조미에 길들여져 그 맛이 없이는 허전하고 불편
해져야하는 , 점점 자극적이고 강한 맛을 서로 불러 들이는 길들임
의 자람과 같은 정서일수 있을까?
얼마전 대통령의 북한 방문을 따라 다녀온 어떤 요리사 분의 말중
에서 그곳 음식은 화학 조미료의 맛이 아닌 담백한 자연 재료의 맛
이 살아있었다는 이야기, 그래서 북한에서 내려 오는 분들께 그런
음식 맛을 대접하려다가, 우리식 대로의 다양한 맛을 주장하는 다른
사람의 다수 의견에 밀린것을 읽은 기억이 난다.
그래 그땅에는.... .

옛 것이 늘 그리운 나이의 맘 그늘에서 어쩌면 우리가 잃은것이,
그리운 것이, 툭박지고 모자란 것만 같은 그 척박한 세월의 껍질
아래 흐르던, 아무리 숨 몰아쉬어 맡아도 맡아도 모자라 안타까웠던
그 구수한 흙내음, 잡을래야 잡을수 없었던 손 가락 사이로 빠지는
햇살 투명한 물 사래맛 아니였던가.....   .

행여 엿질금 내어 단술 끓여 먹고 싶은 불혹의 님들 있으실까
경험 적어둔다.
           ㅡ  겉보리 엿질금 내기  ㅡ
  하룻밤 물에 담그어 두었다가 소쿠리에 건져 하루 한두번 물기
마르잖게 물주면 이 삼일간에 촉이 난다.
촉이 나면 발 부리도 같이 나 엉켜든다. 그땐 한번씩 물에 담그어
씻듯이 풀어서 다시 건져 놓는다.
촉이 엄지 손가락 한 마디 만큼자라면 햇살 바르고 공기 잘 통하는
곳에 널어 말리면된다.
어른들 말은 추울때 얼려 가면서 말려야 단맛이 제대로 난다고 한다.
바삭 물기마르면 속에 뽀오얀 단 가루가 보인다.
방아간에 가서 갈아 국그릇으로 소복하나만 해도 한동이 단술이
된다.엿질금 양이 넉넉하면 그만큼 맛이있다.
           ㅡ 단술(감주)   삭혀끓이기 ㅡ  
한나절 물에 불렸다가 조물 조물 주물러 첫물은 체에 받쳐 따로
놔둔다. 이건 갈아 앉혀서 밥 삭힐 물이다.
물따른 엿질금을 다시 주물러 물부어 다시 거르기 2 - 3회 뽀오얀
물을 모두 우려내는것이다.
첫물과 나머지 우려낸 물을 따로 담아 갈아 앉힌다.
맑게 앉으면 조심스레 윗 물을 따라내고 밑에 하얗게 갈아앉은 지꺼기
는 버린다.
두번 정도 한두시간 간격으로... 하면 물이 맑아진다.
첫물은 좀 누르고 붉다.
쌀을 마른 엿질금양 만큼. 밥솥에 밥과 물을 같이 삭혀야하니 염두에
두고 밥이 넉넉한것이 좋다. 그래야 달다.
보통 밥할때의 물양을 좀 줄여 잡으면 꼬두밥이 된다.
보온 밥솥에 다된 밥과(뜨거울때 바로) 첫물 갈아 앉힌 것을 밥솥 가득
부어 설탕 큰술 하나정도 넣어뒤적여 열두시간 보온 상태로 둔다.
이른 저녁에 안쳐 아침까지 삭히면 좋다.
두껑열어 밥알이 동동 떠 올라오면 다 삭은 거다.
큰 솥에삭힌 것 넣고 받혀둔 엿 길금 물 넣고 생강 작은 조각하나
감초 썰은 것 한쪽 넣고 끓이면 된다 .
끓기 시작하면 설탕 단맛 나도록 입에 맞추어 넣어 한 소큼 더끓여
뒤울안 처마 그늘에(아 참! 요즘 살림이야 베란다겠지)내어놓아 식혀
살 얼음 잡히면 ..... .

얼음 조각 동 동 뜬 단술 한 사발 들이키구 가시우. 




                   아침에 겨우 묵은 엿길금 담궈 놓고는....
                                   수다 아짐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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