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미 옛집에서

와불산

소세골이야기 2006. 8. 25. 22:56

누릇하니 초록 바래어 마르기만 하던 산빛이
아침 문득 눈을 드니 타 오르고 있다.
하루 아침에 선연히 울붉은 옷자락이 수상타 하였더니
달력을 보니 상강.....
절기를 못 속인다했던가?
주춤거리며 돌아드는 겨울이 나뭇 가지손엔 잡히나 보다.
서둘러 잎내릴 설움에 저리 붉어 타니.
아이들 마저도 늘 속들어 사는 산빛이 오늘은 예 같잖은가
"엄마, 옹달샘 구경가자." 아침 나절부터 옷자락 비튼다.
물도 안들여다 뵈는 옹달샘인데... .
상수원으로 마을 윗 자락에 해 놓은 물통을 아이들은
예쁘게도 옹달샘이란다.
날마다 저희 먹는 맑고 단물 솟아 보내니까.
산 마을 살며 처음 유난스레 좋았던게 물 맛이다.
계절따라 온갖 산 것들의 뿌리가 씻겨 때로 쌉싸롭한 물맛을
노인네들은 '산삼 뿌리썩은 물이여' 하며 능친다.
하긴 틀린 말도 아닌것이 이동네 노인들은 유난히 정정코
오래사는 분들도 많다.
팔순에 몇을 더 넘기고도 일손 쉬잖는 할머님네들, 목소리도
짱짱하시다.( 덕택에 젊은 며늘네들 좀 치여 살지만)
어설픈 집정리도 내던져 놓고 겨우 빨래만 해 널고
세놈 손잡고 동넷길 올랐다.
'엄마 산이 예쁘다!'
 동네에서 떨어져 나올수록 목소리가 높아지더니, 언젠 억눌려
살았나 싶게 목청껏 고함을 질러댄다.

언덕밑 덤불 속에난 개울을 찾아들어가 물 마르잖은 웅덩이 하나
발견하곤 그저 물장난이라면 앞 뒤없는 큰 놈은 환성을 지르며
주저앉을 기색.
조금 더 올라가 보자 겨우 추슬러 오르는 길 ,
햇살 받는 앞산과 해 등진 뒷산 기색이 너무도 석연히 다르다.
아직거두잖은 밭곡식들과 떼까치들의 고운 깃 날개가 주인없는
밭둑의 감나무와 둥지 튼 덤불속을 오가며 가을 햇살속 정적을
가른다.
오를수록 앞막아 완강히 다가서는 산기운이 버거운가,
큰놈이 앞서 외마디 소리를 지르자 그 울림에 산까치떼 모두
숲덤불로 후르르  날아든다.

미처 몰랐던 재미난 장난을 발견한 세녀석 깔깔 거리고 소리 지르고
이리 저리 뛰느라 숲은 갑자기 야단 법석 .
주변 날것들 모두 숨어드느라  난장난 산 속.... .
'에이구 마을 사람들이 뭔 일난줄 알겠다.'

그래도 산은 묵묵히 누운 부처 얼굴로
붉게 살찐 볼과 콧등만 산 바람에 어루 만지이고 있다.

아니 , 모처럼의 악동들 생기어린 목청에 슬몃 미소라도 지으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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