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미 옛집에서

며느리 심사

소세골이야기 2006. 9. 2. 09:53

 

 

지난 장날 싱싱한 유자 한 바구니 사다놓고
오일장 다시 한바퀴 돌아 오늘에사
씨아빼고 즙 짜고 얇게 져며 설탕 넉넉히 절였다.
빈 꿀병에 두개하고도 남는다.
온 집안이 유자 내음으로 가득 휘돌아
창 밖에 드는 햇살마저도 새코롬 향기로운듯 하다.

참 오랫 만의 여유.
김장 치르고 할메 생신 .
아침햇살이 가뿐코 느긋한 건 유자 향기때문만은 아니리라.
햇살 건너 지르는 작은 방에서
늘 쳐다보고앉은 할메 그림자 그 눈초리 걸림없이 오는
햇살이 이리 가벼울 줄이야... .
(어쩌지 못하는 며느리 심사로구나.) 
생신 나들이 한 두딸의 은근한 협박 반 회유 반 떼밀려
그저 목메던 서둘 나들이 길 추석 지나고 두달 만에
드디어 나섰다.
그리 가고프던 막내 아들네 아파트에서 우리 할메도
오늘 아침은 며느리 뚱한 심통스런 얼굴 안보는 아침이
개운하리라.
왜 그리 답이 없는 사이인지...
시어머니 며느리의 사이란 ....  .
젊어 혼자되어 자식키운 홀 어머니에게 장성한 자식은
자식이자 기댐이다.
끓임없이 보호받고 관심주기 바라는 아들을 두고
며느린 이쁠래야 이쁠수 없는 자식이다.
의식해서가 아니니 노인도 어쩌지 못한다.
마음에 주어지는 무거리는 이래 저래 미운 자식 탓이 된다.
철없는 아이려니 그렇다고 그 자리에 두도 못하고
부모 자리로 생각하니 야속코 미운맘이 응어리 지고
한차례씩 쌓인 응어리가 무겁다보면 터진다.

생신날 받아놓고 자식들 몰려온다고 생각하면 일없이
기세 등등하여 설치는 노인네가 마찬가지로 이쁘잖아
날 며칠 앞두고 기어이 분란

몸이 아파 걸음을 못 걸어도 무릎 걸음해서라도 차려 내던
밥상 차리기를 십년만에 처음 물려버렸다.
이틀을 들어 누웠다 아이들 배고픈 성화에 어쩌지도 못할
분 삭히기나 하고 어둔 새벽 부엌에 들어서니..
어휴, 내팔자라니.
이틀전 저녁 밥상이 신문지 한장 덮힌체그대로 말라가고
씽크대위에 생신꺼리 장봐와서 손보던 오징어 겉은 마르고
속은 썩어들고있다.

못된 죄인이라니... 팔순넘은 노인네 밥굶긴 죄만 내것이
되었다.  먹을 것 사다가 저들은 끼니 다 때우고서도
하루 반나절 꼬박 분만 삭힌 내 뱃속은 아랑곳없이... .

한 바람 지나고 나면 돌아 보이는 내 모습만 초라하고
허망해지는것이 분란의 끝자리 이건만,
알고도 그저 한발 물러선 그림으로만 바라볼수 없는것이
속담겨 사는 생활이다.

속 추슬러 담고 며칠, 이틀두고 모여든 식구들 한 바탕
북새통치며 일년에 한번 씩의 그 주어진 날 치름했다. 
흩어져 제각기 돌아가는 갈래 자식들 , 그 한자락에 묻어
할메도 서울 나들이를 떠난거다.
길어야 한달 남짓...
아들에게, 손자 녀석들에겐 할메 빈 방이 허적하기만 할텐데
시집살이가 뭔지, 며느리에겐 한달 그 넘치게 주어진 휴가
때문에 아침 한나절이 온통 느긋코 어깨가 가비얇다.

시집살이 며느리되봐야 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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