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내 장마비에 몇차례 태풍에, 눅어 어설픈 광을
벼르고 별러
정리를 시작했다.
사람의 살림살이 왜그리 참 많이도 지접살이가 많은지.
그렇다고 섣불리 버리지도, 쓰지도 않는 묵힌
물건들,
우선 아이 낳고 키우고 그 십여년 천덕 꾸러기로 전락해 버린
문고판 책 보퉁이들을 풀렀다.
곰팡내 나고 거미줄 엉킨
한권 한권 손으로 쓰다듬어 보니
아득히 묻어나는 것 또있다.
책장 정리때 마다 번듯한 장정본 치레에 아이들 책에
밀려
자리비킴하다 광속까지 떠밀려온 작은 문고판들,
이젠 누렇게 바랜 책장에 세로내린 글줄마저 형편없이 초라해진
그 모습이
나이들어가는 우리 속내같아 잠시 서글픔.. .
다시 상자속에 넣기 아까워 구석에 둔 헌 책상위를 말끔 치우고
안쓰는 책꽃이 올려놓고
차곡차곡 꽂아 보았다.
누구를 위한 서재? 혼자 비싯 웃었다.
그런데 왠지 낯이 익다.
그건 이십여년도 훨씬 그
너머의 내 책꽃이 모습이다.
책 귀하던 시절 ,사회 초년생 월급 날이면 책방부터 달려갔다.
만만찮은 책값에 겨우 한두권으로 아쉬워
하던 그 시절에
문고판 책이 나왔을 때, 아, 그 신나던 마음... .
가방에 쏙 들어가는 크기가 좋았고 몇권을 사도
부담없던
그래 잊어버려지지도 않는다.
삼백 몇십원의 그 책값이.... .
한 시절을 그 속에 묻혀 지냈던 내겐
버힐수없는 마음지기이다.
뭔 내림인지 조용~한 기척 이상해서 둘러보면 구석 자리에
박혀 시때없이 책에 코 박고 있는 큰 딸
아이.. .
밥 때도, 숙제도 대책없는 아이에게 잔소리 퍼붓다 보면
내게도 친정엄마에 똑 같이 들었던 잔소리가 생각나
슬몃
목소리 감추어 들때가 있다.
우리 어릴땐 시골 살림에 정말 동화책이 귀했다.
3학년 때던가 군내 글짓기 대회에서 상으로
받은 몇십권짜리
동화책전집이 학교 도서관의 기증품이되어 열람만 자유로운
내 특권이되었던 생각이 난다.
집에 오면 볼 책이 없어
허전했던 나는 친정 아버지의 앉은뱅이
책상위에 몇권 꽃혀있던 책들을 한문은 건너띄어가며 뜻도 제대로
알지못할 것들을 읽고 또
읽었다.
거기 있던 책중에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제목이 소월의'진달래꽃'
과 '순이의 시집' 이상의'날개'이다.
소월의'
진달래'는 유난히 다정 다감한 친정 아버지의 정서덕에
나와 아랫 동생은 거의 말배우기로 외우며 자랐더랬고
'날개'를 읽으며 주인공의
뒷 골방 문틈으로 드는 햇살장난을
내가 앉아있는 골방의 문틈으로 드는 햇살과 빗대어 보던 기억도
남아있다.
딸아이가 언듯 이
고방속에서 묵은 책갈피 무심히 뒤적이다가
어느날엔가 엄마가 만난 그 빛나던 기쁨 친구들을 세월너머에서
만난다면... .
한 동안
일손 놓고 지나간 날과 오지 않은 날을 넘나드는 날개
를 탔다.
절로 웃음이 나온건 우리 딸 아이 이제 초등학교 2년생 이라는
오늘로 문득 돌아와서다.
그런데 내가 국민학교 3학년때 읽은 이상의 날개나 어른이 된후
읽은 날개나 별다른 내용이
없다.
주인공의 아내가 하는 일이 무언지만 나중에 알았을 뿐... .
하루해 다 가도록 어둑한 광 속에서 간디와 네루가 어깨
동무하고
토인비와 햇세가 어울려 놀고 섬진강도 기탄잘리의 벵골 만도
아름다운 물결치는 강 기슭로 있었다.
백석의'
고방'처럼
내 아이들 세월 훌쩍너머 먼 날에서
문득 삶이 곤해 질때
돌아 들어와 그 어둑한 고요속에
부드러운 짚
내음속에
깃들어
몇 시간이라도 쪼그려 앉아
옛 날의 어린 기쁨날 그 추억들로
그들먹해진 가슴 다시 추스려
그리 일어
설
구석 자리 작은 깔개하나 놓아두었다.
묵은 술동이 쌀 뒤주 대신
묵은 장난감통이 ,부서진 로봇과 자동차들이 들어
있지만 .
2000. 10.